Sticky Fi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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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록밴드 롤링 스톤스가 1971년 4월 23일 발매한 그들의 정규 9집이다.
2. 상세[편집]
롤링 스톤스 4대 명반[3] 중 하나인 동시에 롤링 스톤스의 최전성기에 발매된 앨범이다. 당시 알타몬트 공연 사태로 인해 대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던 롤링 스톤스였으나, 이 앨범은 그러한 비난들은 전부 배째라는 식으로 오히려 기성 세대의 비위를 더욱 더 상하게 할 만한 트랙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이 발매된 1971년에 빌보드 200과 UK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반면 인증 판매량은 약 350만 장 정도로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Brown sugar가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고 Wild Horses가 애창곡으로 사랑받는 등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롤링 스톤스의 앨범 중 하나이다.
해당 앨범에는 롤링 스톤스의 명곡이라고 불리면서 후술할 논란의 대상이 된 Brown Sugar를 비롯하여 잔잔한 발라드 넘버인 Wild Horses, 믹 테일러의 기타 솔로가 일품인 Sway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믹 테일러의 웅장한 연주가 일품인 Moonlight Miles,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으나 탁월한 로큰롤 사운드로 앨범을 걸작으로 떠받쳐준 막강한 조연 역할을 해준 Dead Flowers 등이 수록되었다.
믹 테일러가 풀 세션으로 참여한 첫 번째 앨범이다. 사실 믹 테일러는 전작인 Let It Bleed에서도 참여했었으나, 전곡에 제대로 참여하기 시작했던 건 본작부터였다. 또한 곡 수위가 많이 순화되었다는 점, 롤링 스톤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하드하다는 점, 국내 기준으로도 상당히 대중성이 있다는 점 등 때문에 국내에서는 많은 팬들로부터 Some Girls[4] 와 더불어 롤링 스톤스 입문용 앨범으로 많이 추천되는 앨범이기도 하다.[5]
3. 녹음 배경[편집]
비틀즈, 비치 보이스 같이 60년대를 씹어먹던 밴드들이 은퇴를 하게 되었고, 아직 남아있던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이 새로운 시대인 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 같은 후배 밴드들에 대한 응답으로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 앨범들이 바로 1971년에 나온 본작과 더 후의 Who's Next이다. 당시 대중음악계는 레드 제플린의 대 히트로 인해 하드하고 연주가 화려한 음악이 유행이었다. 레드 제플린이 몰고 온 하드 록, 헤비 메탈 열풍에 따라 두 앨범 다 더 하드해지고 화려해진 음악을 원하는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으며, 실제로 롤링 스톤스의 앨범중 가장 하드 록스러운 앨범으로 평가받는다.[6]
당시 언론들은 은퇴한 비틀즈를 뒤로하고 그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롤링 스톤스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 그런 화해의 제스처가 소용이 없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히피 문화의 끝물이던 1969년에 발생한 알타몬트 공연 사건과 래드랜즈 별장 사건이다.[7] 당시 롤링 스톤스는 알타몬트 공연에서 전문 경호 업체가 아닌 헬스 엔젤스 갱단을 고용했고, 결국 공연에서 난동이 일어나 헬스 엔젤스 갱단에게 관객 한 명이 살해당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롤링 스톤스는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으며, 이와 더불어 앨런 클라인과의 저작권 분쟁 또한 있었다.[8] 당시 멤버들은 앨런 클라인과 더불어 계약하고 있던 데카 레코드와 재계약하기 싫어했다. 이 때문에 마지막으로 ‘Schoolboy Blues’를 매우 조잡하게 만들고 밴드의 독자적인 레코드사인 ‘롤링 스톤스’를 만들어 데카 레코드를 떠나게 된다. 즉 이 노래는 롤링 스톤스 레코드에서 발매된 첫 번째 앨범이었던 것이다.[9]
한편 멤버들은 앨범 작업을 하면서 로고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된다. 그렇기에 디자이너인 ‘존 파시’가 로고를 디자인 해주었는데, 힌두교의 신인 칼리의 입술과 혀를 따왔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롤링 스톤스의 입술 로고는 이 앨범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4. 앨범 커버[편집]
앨범 커버가 매우 유명한데, 팝아트의 대명사로 꼽히는 앤디 워홀이 앨범 커버를 제작했다. 이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인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에서 드러난 변태성과 함축성으로 악명을 떨쳤던 그는 이번에도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바로 자켓에 실제 지퍼를 달았다는 점. 이 자켓 뒤에는 삼각 팬티를 입고 있는 속커버가 나온다. 그래서 지퍼를 내리면 팬티가 살짝 보인다. 이러한 선정성 때문에 몇몇 국가에서는 검열을 당해 이 커버가 아닌 다른 커버로 대체되어서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위에 제시되어 있는 스페인반 커버가 있다.
이 커버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많은 팬들은 커버 속 인물이 믹 재거일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실제로 앤디 워홀은 여러 명의 모델을 촬영했으마 이중에 믹 재거는 없었다고 한다. 또한 앤디 워홀의 연인인 제드 존슨의 쌍둥이 ‘제이 존슨’이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제드 존슨이 직접 부인하였다.
국내에 김광민이 소유한 미개봉 LP가 있다고 한다. 가치는 부르는 게 값이라 하고 초판 발매 미개봉본으로 생각된다. 거기에 지퍼도 달렸다.
5. 흥행[편집]
롤링 스톤스의 최전성기에 나온 앨범답게 음악성, 상업성 양쪽에서 모두 성공하였다.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했으며, 이후 15주 동안 1위를 차지하게 되는 Tapestry에게 밀려날 때까지 무려 4주 동안이나 1위를 지키고 있었다. UK 차트에서도 폴 매카트니의 Ram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이후 Ram에게 1위를 빼앗겼으나, 다시 Ram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였다. 이 외에도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무려 10개국의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다.
롤링 스톤스의 정규 앨범 중에서는 다섯 번 째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10] , 미국에서만 공식적으로 300만 장이 팔렸다. 이 외에도 영국에서는 30만 장, 프랑스에서는 10만 장, 호주에서는 35,000장이 팔리면서 약 350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즉 동년에 나온 더 후의 Who's Next와 비슷한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것이었다.[11]
인기와 명성에 비해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지는 못했는데, 전작인 Let It Bleed보다도 적은 음반 판매고였다.[12] 이는 1971년이 매우 좋지 않았던 시기였던 점이 가장 크다. 후술하겠지만 1971년은 대중음악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수많은 명반들이 발매됐던 해였고,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으로 무려 3,700만 장 이상이 팔린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IV와, 무려 2,500만 장 이상이 팔린 캐롤 킹의 Tapestry가 발매되었던 해였다. 특히나 Tapestry는 이 앨범과 발매 시기가 거의 같았고, 빌보드 200에서 이 앨범을 밀어낸 앨범도 바로 Tapestry였다. 즉 음반 판매량으로는 이 음반들에게 밀린 것(…).
하지만 수록곡중에서 Brown Sugar가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하면서 음반 판매량과는 별개로 롤링 스톤스 앨범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히트한 앨범 중에서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6. 음악적 성향과 평가[편집]
[include(틀:평가/메타크리틱(음악),album=sticky-fingers-deluxe-edition, artist=
the-rolling-stones, critic=100 ,user=6.4)]
역사상 가장 훌륭한 록밴드로 꼽히는 롤링 스톤스의 앨범 중에서도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에 꼽히는 앨범답게 음악성 또한 인정받고 있다. 평론가들이 공통점으로 꼽는 이 앨범만의 독특한 점은 곡들의 수위가 상당히 많이 순화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Brown Sugar나 Bitch와 같은 높은 수위의 곡들은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이전 앨범들인 Beggars Banquet나 Let It Bleed보다는 확실히 겸손(?)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롤링 스톤의 ‘존 란다우’는 Sticky Fingers가 이전 두 음반에서 보여주었던 롤링 스톤스만의 정신이 약하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며,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중 가장 평가가 낮은 앨범이기도 하다.[13] 다만 상술했듯이 당시 롤링 스톤스는 알타몬트 공연 사태로 강한 비판을 받고 있었기에 이를 의식해서 차기작의 곡들 일부를 일부러 순화시켰을 가능성 또한 있다.Although Sticky Fingers is one of the best rock albums of the year, it is only "modest" by the Rolling Stones' standards and succeeds on the strength of songs such as "Bitch" and "Dead Flowers," which recall the band's previously uninhibited, furious style.
비록 Sticky Fingers는 올해의 가장 훌륭한 록 음반 중 하나이지만, 이 앨범은 롤링 스톤스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가장 “겸손”한 축에 속하며, 이전의 무절제함이나 격앙된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Bitch”나 “Dead Flowers” 같은 노래들의 강점으로 인하여 성공했다.
이러한 비판을 제외하면 음악성이 매우 뛰어난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례로 ‘더 빌리지 보이스’에서 평가한 ‘1971년 최고의 명반 순위’에서 이 앨범은 무려 2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어클레임드 뮤직에 따르면 이 앨범은 1971년에 발매된 앨범들 중 다섯 번 째로 평가가 좋은 앨범이다.[14] 1971년에 수많은 명반들이 발매된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것이다.[15]
가사 같은 경우는 몇몇 평론가들의 주장처럼 약간 순화되었을지는 몰라도, 음악성은 롤링 스톤스가 추구하는 하드 록 및 블루스 록을 계승하였다. 또한 당시 레드 제플린의 헤비 록 열풍 속에서 본작의 곡들 또한 더 하드해졌다는 특징도 있다. 이를테면 Sway같은 곡들에서는 화려한 기타 속주를 가미하거나, 필인은 최대한 자제하고 그루브를 지향하는 찰리 와츠가 Bitch같은 곡들에서는 화려한 필인을 넣는 등 전체적으로 곡들 자체가 전작보다 더 하드하고 화려해졌다. 블루스 록 및 하드 록 계열에서 명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Brown Sugar를 비롯하여 Moonlight Mile 같은 노래들은 후대의 수많은 후배 록밴드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다만 블루스 및 블루스 록이라는 장르의 입지가 제로에 가까운 한국 특성상 국내에서는 충분히 대중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 역시 다른 롤링 스톤스의 앨범들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롤링 스톤스가 처음으로 관악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앨범이다. 키스 리처즈의 말에 따르면 오티스 레딩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실제로 롤링 스톤스는 관악기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록 밴드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관악기는 이후에 Exile on Main St.에서도 미친 연주를 보여주는 바비 키스가 연주하였다.
7. 트랙리스트[편집]
7.1. Side A[편집]
7.1.1. Brown Sugar[편집]
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7.1.2. Sway[편집]
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7.1.3. Wild Horses[편집]
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7.1.4. Can't You Hear Me Knocking[편집]
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7.1.5. You Gotta Move[편집]
Composed/Wirtten by 프레드 맥도웰, 개리 데이비스
7.2. Side B[편집]
7.2.1. Bitch[편집]
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7.2.2. I Got the Blues[편집]
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7.2.3. Sister Morphine[편집]
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마리안느 페이스풀
7.2.4. Dead Flowers[편집]
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7.2.5. Moonlight Mile[편집]
믹 재거가 공연이 끝나고 지친 채로 투어 버스 안에서 쉬면서 키스 리처즈 없이 혼자 작곡했다고 한다.Composed/Wirtten by 재거-리처즈
8. 차트 성적[편집]
9. 인증 판매고[편집]
10. 참여자[편집]
- 믹 재거 – 리드 보컬, 백킹 보컬,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캐스터네츠, 마라카스, 퍼커션
- 키스 리처즈 –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백킹 보컬
- 믹 테일러 –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 빌 와이먼 – 베이스 기타, 일렉트릭 피아노
- 찰리 와츠 – 드럼
- 지미 밀러 - 총괄 프로듀서
- 글린 존스 – 엔지니어
- 크리스 킴세이 – 엔지니어
- 지미 존슨 – 엔지니어
- 더그 색스 – 마스터링 엔지니어
- 앤디 워홀 – 앨범 커버 제작
[1] B면은 Bitch(미국), Let It Rock(영국).[2] B면은 Sway.[3] Beggars Banquet, Let It Bleed, Sticky Fingers, Exile on Main St.[4] 이 앨범은 블루지하다기 보다는 디스코 및 팝 성향으로 이루어져 있어 Sticky Fingers와 더불어 국내 정서와 그나마 잘 맞는다. 다만 Some Girls 또한 블루스의 향기가 나긴 한다.[5] 보통 국내에서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으로 입문하려는 경우에는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하드 록 명반인 본작이 가장 먼저 추천된다. 반대로 4대 명반 중 국내 정서상 익숙해지기 가장 어렵다고 평가받는 앨범은 이 앨범인데, 이는 이 앨범은 1960-70년대 미국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쌓여 있어야 익숙하기 때문이다.[6] 실제로 두 앨범 모두 수록곡 중에서 화려한 기타 솔로가 포함된 수록곡들이 존재한다. 참고로 롤링 스톤스와 더 후는 화려한 연주보다는 그루브를 지향하던 밴드였다.[7] 근데 이 두 사건이 롤링 스톤스를 매장하려던 언론에 의해서 부풀려진 사건이라는 말도 존재하긴 하다. 특히 후자는 확실하게 루머로 밝혀졌고 전자는 롤링 스톤스의 책임이 어디까지였는지 아직도 논쟁중이다. 그 당시 같이 공연하던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같이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고 롤링 스톤스의 책임이 100퍼센트라는 주장도 있으며, 롤링 스톤스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두 사건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은 영어 위키를 참고해보자.[8] 비틀즈 팬들에게 천하의 개쌍놈 취급받는 그 사람 맞다.[9] 그래서 실제로 이 앨범 이전에 나온 앨범의 곡들은 앨런 클라인의 회사 소유 지분이 크며, 유튜브에도 롤링 스톤스의 계정이 아닌 앨런 클라인 회사의 계정으로 자막 영상이 업로드된다.[10] 컴필레이션 앨범까지 포함하면 7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11] Who's Next는 약 400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12] 약 1만 장 차이로,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13] 물론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중에서’이지, 객관적으로 본다면 올타임 53위인 음반으로 어마어마한 명반이다.[14] 참고로 1위는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 2위는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IV, 3위는 더 후의 Who's Next, 4위는 조니 미첼의 Blue이다.[15] 일례로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앨범 목록에는 1971년에 발매된 앨범들이 해당 앨범을 포함하여 무려 8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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